"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역사를 건드린 일본에게 보여준 역대급 참 교육"
"최근에 밝혀진 한 운동화 사진에 한국인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소식이 화제입니다."
지난 주말 SBS '집사부일체'에서 김연경 선수가 보여준 애국심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 여자배구 프로선수로는 최초로 해외에 진출하며 놀라운 업적을 이룩한 김연경은 한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김연경은 2017년 광복절에 열린 경기에서 협찬사인 일본 브랜드 신발을 신었다고 했습니다. 일본 브랜드가 버젓이 달린 신발을 신고 경기를 뛰는 것이 싫었다는 김연경은, 일본 상표 위에 "대한독립만세"라는 글자가 적힌 테이핑을 붙였습니다. 협회로부터 경고를 받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당당히 했다고 했습니다. 김연경은 터키팀에서도 활동할 때도 보호대에 태극기를 붙이고 경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김연경은 늘 영광의 순간마다 태극기를 들어 올렸습니다. 해외에서 활동하다 보니 애국심이 더 생겼다는 김연경은 최근 국내로 돌아와 소속팀이었던 흥국생명으로 복귀했습니다. 2009년 해외로 진출한 지 11년 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김연경이 받는 연봉은 3억 5천만 원이라고 밝혀져 의아함을 주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연봉을 받았던 김연경은 10억 이상 적은 액수를 받으며, 후배들이 더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이 포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18년엔 배우 조진웅이 수억 원대의 광고를 거절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수억 원의 광고가 들어왔지만 조진웅은 단번에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광고를 제안한 기업의 모태가 일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더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보통 광고 관계자들은 스타를 설득하기 위해서 아내를 찾아가는데, 조진웅의 아내는 자신을 찾아온 관계자들에게 남편이 안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며, 자신이 남편을 설득할 이유가 없어 단호하게 돌려보냈다고 했습니다. 김연경과 조진웅이 일본 브랜드를 부끄러워하거나 일본 기업의 제의를 거부하는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도 일본 정부는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7일 일본 산케이 신문에서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나서 공분을 샀습니다. 현재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강제 매각 절차가 진행되자 일본은 보복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산케이 신문은 이에 일본 자산이 한국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됐으니 배상 문제는 한국이 자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 신문 서울 주재 객원 논설위원은 7일 '발전의 근원은 일본 자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패전 후 일본인이 한반도를 떠날 때 남긴 거액의 재산이 미국을 거쳐 한국 측에 양도됐고 "경제발전의 시초가 됐다"며 이런 어이없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는 "한국의 재벌기업 SK그룹의 뿌리가 일제시대 일본인 회사 '센 코요 직물'이었다"며 "1945년 패전으로 일본인이 철수한 후 직원이었던 한국인에게 불하돼 한국 기업이 됐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일본이 남긴 자산 총액이 당시 통화로 52억 달러였고 현재 가치로 수천억 달러(수백조 원)는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같은 한국의 기업 형성 과정은 압도적으로 일본에 의한 투자개발의 결과이며, 한국의 공식 역사관인 수탈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수탈한 게 아니라 경제 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는 "방대한 일본 자산을 생각한다면 최근 징용공 보상 문제 등처럼 이제 와서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과거 보상 문제는 모두 한국에서 처리하면 될 이야기"라고 주장했습니다.
구로다는 확신에 찬 주장을 내세우며 길게 글을 썼지만, 그의 주장엔 빠진 아주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발생한 수탈, 착취, 인권 침해 등의 실상은 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일본 기업들이 이룬 것은 조선의 자원과 노동력을 투입해서 나온 결과였으며, 이 또한 북쪽에 공업시설들이 많이 지어졌으나 1950년 한국전쟁 때 다 파괴되어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6·25 전쟁 때 일본은 오히려 신이 준 선물이라며 무기를 팔아서 추후 일본 경제성장의 초석을 만들었습니다. 현재도 일본 역사 교과서에는 6·25가 일본에 미친 영향에 '조선 특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선 특수란 일본이 미국의 병참기지로서 전쟁물자를 공급한 것이 일본 경제의 부흥으로 이어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 경제기획청에 따르면, 1950년부터 1955년 사이 일본이 조선 특수로 벌어들인 외화 수입은 약 40억 달러로, 당시 일본 안 해 국내총생산(GDP)의 20%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일본의 자동차 수출도 전쟁 발발 전후 1년 새 400배 이상 늘러 도요다 에이지 전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회고록에서 6·25를 "구제의 신"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6·25 발발 당시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가 6·25는 "신이 내린 선물"이라며 "일본은 이제 살았다"라고 말했고, 그의 외손자이자 일본 부총리인 아소 다로는 "운 좋게 한국전쟁이 일어나 일본 경제 재건이 빨라졌다"는 말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결국 일본은 한국에 36년간 식민지배를 해서 온갖 것들을 수탈해가고 인권을 유린하며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음에도, 또다시 6·25 전쟁으로 한반도가 폐허가 될 때 자신들은 무기를 팔아서 부를 이뤘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래 놓고 일본이 남겨준 것들 때문에 한국이 부유하게 되었다는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과거의 역사를 부인하고,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를 기리며, 전 세계를 덮친 바이러스를 전쟁과 같은 재앙으로 여기고, 한국전에 참전했던 국가들과 용사들에게 은혜를 보답하고 있습니다. 22개 나라에서는 한국이 전한 마스크 100만 장에 자신들을 잊지 않은 한국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는 정반대였습니다. 한국은 은혜를 입은 과거를 잊지 않고 갚고 있으나, 일본은 부끄러운 과거를 억지로 왜곡하고 스스로 지우고 있습니다. 나치에 의해 수많은 유대인이 희생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댓글